
제조·건설 등 전통 산업의 AI 전환(AX)이 IT 기업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십년 축적된 데이터가 있어도 실제 AI 학습에는 쓸 수 없는 '데이터 역설' 현상이 두드러지며, 기술 도입보다 조직 구조와 데이터 체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AX 부문에서 15년간 근무한 A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전통 기업의 AX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기업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며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형자산 중심 비즈니스, 실패 허용 안돼
IT 기업이 무형의 서비스와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삼는 것과 달리, 제조·건설 등 전통 기업은 공장, 설비, 건설 현장 등 유형 자산을 기반으로 한다. IT 기업이 '빠른 실패'를 통해 혁신하는 반면, 전통 기업은 안전·품질·수율이 최우선 가치다.
A씨는 "물리적 사고가 직결되는 현장 특성상 보수적이고 계층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AI 같은 혁신 기술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데 큰 장벽이 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많지만 학습엔 못 써...전처리에 시간 소요
더 큰 문제는 '데이터 역설'이다. 전통 기업 경영진들은 "수십년간 쌓인 데이터가 있으니 AI 도입이 쉬울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과거 데이터들은 AI 학습용이 아니라 단순 보고나 승인 등 운영 목적으로 설계됐다. 데이터가 시스템별로 고립되거나 담당자 개인의 엑셀 파일에만 존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장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디지털화되지 않아, 실제 AI 모델링보다 데이터 전처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해관계자간 인식차로 'POC의 늪' 빠져
이해관계자 간 인식 차이도 심각하다. 경영진은 속도를 강조하고, 현업은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며, IT 부서는 AI를 외부 업체에 맡기면 되는 시스템으로 치부한다.
A씨는 "이런 동상이몽이 결국 '주인 없는 과제'를 양산한다"며 "많은 기업이 POC(기술검증) 단계에만 머물 뿐 실제 비즈니스 전반으로 AI를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업과 개발사 사이를 조율하고 전체 판을 짜는 오너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X 인재, '기술자'보다 '번역가·조율자' 역량 중요
전통 기업에 필요한 AX 인재상도 IT 기업과 다르다. 단순히 AI 모델을 잘 만드는 기술자보다는 비즈니스 문제를 AI가 풀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번역가'이자, 사람과 시스템을 엮는 '조율자' 역량이 훨씬 중요하다.
실제 채용 공고에서도 전통 기업은 기술 스택보다 과제 발굴 능력과 이해관계자를 움직여 실행하는 기획·관리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A씨는 "전통 기업의 AX는 단순히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파편화된 데이터를 잇고, 현장 노하우를 디지털로 이식하며,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전방위적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AX 담당자는 도메인과 기술을 연결해 변화를 설계하는 개척자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용어설명]
AX(AI Transformation):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 모델, 업무 프로세스,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전환의 한 형태. 단순 AI 도구 도입을 넘어 전사적 혁신을 의미한다.
POC(Proof of Concept): 개념증명 또는 기술검증. 신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 샘플 데이터로 성능을 검증하는 초기 단계를 말한다.
디잡뉴스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