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100 비행사진 / 자료제공=(주)나르마
"항우연에서 25년, 이제 남은 25년은 사업가로 살고 싶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4반세기를 보낸 연구원이 드론 창업가로 변신했다. 국책연구소에서 개발한 첨단 무인기 기술을 상용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주인공은 나르마의 권기정 대표다.
"원래 국가연구기관은 기술 개발까지만 하고 상용화는 기업이 해야 합니다. 항우연에서 개발한 우수한 무인기 기술이 연구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깝더라고요." 권 대표는 창업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날개 달린 드론, 50km 날아간다
나르마가 개발한 무인기는 일반적인 드론과 다르다. 프로펠러로 하늘을 나는 것은 같지만, 비행기처럼 날개가 달려 있어 훨씬 멀리, 빠르게 날 수 있다. 일반 드론의 비행거리가 20km 정도인데 비해 나르마의 무인기는 최근 성능 개량을 통해 50k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핵심 기술은 '틸팅(Tilting) 테크놀로지'다. 프로펠러를 앞으로 기울였다가 세웠다 하는 기술로, 수직으로 이착륙한 뒤 고속 비행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정말 어렵습니다. 프로펠러를 기울이는 동안 힘의 균형이 깨지면 순식간에 추락하거든요." 권 대표는 기술적 난이도를 설명하며 "국내에서 이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저희 포함 단 두 곳뿐"이라고 강조했다.
비행기에 날개가 필요한 이유는 에너지 효율 때문이다. 일반 드론은 공중에 떠 있으려면 자체 무게의 두 배에 달하는 추력이 필요하지만, 날개가 있으면 3분의 1의 힘만으로도 비행할 수 있다. "보잉 777 같은 여객기가 적은 연료로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좌) AF100-AED 25년 MBN 여자오픈 대회 (우) 제 44회 KPGA 오픈대회 전시 / 자료제공=(주)나르마
창업 후 100억 투자...추락으로 수십억 손실도
하지만 혁신 기술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창업 후 지금까지 약 100억원을 썼는데, 그중 몇십억은 추락 사고로 날렸습니다." 권 대표의 솔직한 고백이다.
"배달 로봇이 고장 나면 사람이 가서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드론은 공중에서 추락하면 끝입니다. 사람이 다치거나 물적 피해가 엄청나죠." 그는 멀티콥터 형태의 일반 드론은 만들기 쉽고 추락도 잘 안 하지만, 고속 비행을 위한 고정익 드론은 균형 잡기가 훨씬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항우연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을 고도화했다. 항우연 연구소 기업 출신답게 원천 기술을 활용하되, 상용화에 필요한 고도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긴급의약품부터 골프장 커피까지...다양한 활용처 발굴
나르마는 'Fly for People'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상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대전시와 협력해 계족산, 장태산 등에서 실종자 수색 실증을 진행했고, 심장 제세동기 배송 시스템도 개발했다. 충남대병원과 건양대병원 사이에서 해독제를 배송하는 비행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건양대병원에만 있는 해독제를 충남대병원으로 긴급 배송하는 실증사업을 했습니다. 대전 시내 상공을 드론이 날아다닌 거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골프장 사업이다. 한 유명 골프장에 심장 제세동기를 드론으로 배송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인데, 최근에는 커피와 맥주 배송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골프 치다가 '따뜻한 커피 4잔' 주문하면 드론이 날아와 배달합니다. “
골프를 즐기는 이용객들이 라운딩 중에도 보다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드론 배송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사용량에 따라 이용료를 받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도 활용처를 넓히고 있다. 과수원의 까치와 참새를 퇴치하는 조류 퇴치 시스템, 다분광 카메라를 장착해 병충해를 감지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 중이다.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찍으면 화질이 뭉개지는데, 이를 속도 데이터를 활용해 다시 복원하는 디블러링(De-blurring) 기술까지 확보했습니다.“

AF200 비가시권 비행사진 / 자료제공=(주)나르마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국산화가 더 중요"
권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국산화다. "요즘 국산화 하면 모터, 프로펠러 같은 하드웨어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국산화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드론 업체들이 PX4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픈소스는 공짜니까 예산을 책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업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오픈소스를 쓸 수밖에 없죠." 문제는 보안이다. "오픈소스를 다운로드할 때 누군가 백도어를 심어놓으면 찾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프로그램 양이 방대하거든요."
나르마는 오픈소스를 완전히 클리어하고 백도어가 없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인증 수준으로 만들어졌으며, 굿 소프트웨어(GS) 인증도 석 달 내 받을 계획이다. "중국으로 데이터를 보내거나 어디로 데이터를 빼내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안전(Safety)과 보안(Security) 두 가지를 모두 확보한 소프트웨어입니다."
오픈소스를 완전히 정리한 후 재구축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개발한 소프트웨어보다 기능이 훨씬 풍부하다. "백지에서 코딩을 시작한 업체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기까지밖에 못 옵니다. 우리는 오픈소스 수준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털어내고 재구축했기 때문에 기능 면에서 큰 격차가 있습니다."
최근 다른 드론 회사에서 나르마의 소프트웨어를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자체 개발의 한계를 느낀 거죠. 특히 국방 분야에서는 오픈소스를 쓰면 안 됩니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지금까지는 예산 문제로 오픈소스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미국 시장 진출 목표... 틸팅 기술로 세계 1위 꿈꾼다
나르마는 최근 국내 공공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틸팅 드론 기술을 바탕으로, 한 번의 출동으로 넓은 범위를 수색할 수 있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실증 경험을 발판 삼아 나르마는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공공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쓰러진 사람이나 숨어 있는 사람을 탐지하기 위한 AI 기술 고도화도 병행 중이다. 기본적인 사람 인식 AI를 탑재해 비행 및 착륙 과정에서 사람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멈추고 경고 방송을 송출하는 안전 기능을 구현했으며, 향후에는 나무 아래에 가려진 인물이나 쓰러진 사람까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정상 데이터는 많은데, 비정상 상황 데이터를 모으기가 어렵습니다. 올해 경찰청과 함께하는 실증사업에서 이런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할 계획입니다.“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도 이미 시작됐다. 나르마는 미국 공공기관 납품을 위한 필수 인증인 ‘Green UAS’ 절차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에 설립한 현지 법인 ‘Narma US, Inc.’를 중심으로 미국인 인력을 채용해 마케팅과 사업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권 대표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틸팅 테크놀로지의 세계 1위 기업이 되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고 시장을 넓혀가는 단계입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하드웨어 국산화만큼, 아니 그보다 더 소프트웨어 국산화가 중요합니다. AI든 로봇이든 드론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예산을 책정해서 오픈소스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기술 자립이 가능합니다."
항우연 연구원에서 드론 사업가로 변신한지 약7년, 추락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기술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온 권기정 대표. 그가 꿈꾸는 '하늘을 나는 배달부'가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디잡뉴스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