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용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 '명문대 졸업장'이 취업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 기업들은 '학위(Degree)'보다 '스킬(Skill)'을 중심으로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어디서 배웠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킬 기반 채용, 대세로 자리잡다
스킬 기반 채용이란 학력이나 전통적 경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대신, 실질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즉, '이 사람이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다.
이 흐름은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확산되었고, 현재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 같은 IT기업뿐 아니라 제조와 유통 분야 대기업에서도 직무역량 평가 중심의 무스펙 채용이 늘고 있다. 채용공고에서 "○○대학교 졸업" 조건이 사라지고, 대신 "실무 프로젝트 경험"이나 "특정 툴 활용 능력"이 필수 조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왜 스킬을 중시하게 되었나
서울의 한 HR전문가는 "서류에 적힌 학교 이름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며 "특히 AI, 데이터, 자동화 관련 직무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스킬 중심 채용으로 전환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먼저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또한 디지털 전환(DX)으로 직무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회계직군에서도 이제는 데이터 분석과 자동화툴 활용 능력이 필수 스킬이 되었다. 전통적인 회계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마케팅 직군도 마찬가지다. 창의성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A/B 테스팅, 광고 플랫폼 운영 등 기술적 역량이 함께 요구된다.
무엇보다 실무 적응력과 문제해결력이 채용 후 성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입증되었다. 결국 기업은 '졸업장'보다 즉시 투입 가능한 역량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있다.
포트폴리오가 이력서를 대신한다
국내 구직시장에서도 '포트폴리오 중심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 개발자는 깃허브(GitHub)에 올린 프로젝트로, 디자이너는 비핸스(Behance)나 노션 포트폴리오로, 마케터는 실제 캠페인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이제는 이력서보다 '결과물이 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IT 스타트업 채용담당자는 "지원자의 학력란은 거의 보지 않는다"며 "대신 깃허브에서 코드 품질을 확인하고,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에서는 서류전형 자체를 생략하고, 포트폴리오 심사와 실무 과제로 바로 넘어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전공자나 경력 단절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학벌이나 경력이 부족해도,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만 있다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도 빠르게 변화 중
정부와 대학, 민간교육기관들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부터 'K-디지털 트레이닝' 과정을 2배 확대해 코딩, 데이터분석, UX디자인 등 실무 중심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단순한 이론 교육이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과정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들도 '마이크로디그리(Micro-Degree)' 제도를 도입해 단기 집중형 스킬 자격증을 학점처럼 인정하기 시작했다. 4년짜리 학위 대신, 필요한 스킬을 선택적으로 배우고 인증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앞으로 대학은 졸업장을 주는 곳이 아니라 평생 학습 허브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계속 돌아와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커리어 전략, 이렇게 바꿔라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개인의 커리어 전략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학위를 대체할 수 있는 '작은 증명서(Micro-Certification)'를 확보하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글로벌 기업은 자체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채용 시 이를 실질적 자격으로 인정한다. 예를 들어 구글의 데이터 분석 자격증이나 AWS의 클라우드 자격증은 해당 분야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자기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관리하라. 한 프로젝트의 결과물, 문제해결 과정, 협업 경험을 기록해두는 습관이 중요하다. 단순히 "무엇을 했다"가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접근했으며, 무슨 결과를 냈는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습관을 유지하라. ChatGPT, Copilot, Notion AI 등 최신 업무도구 활용 능력은 이미 대부분 직무에서 필수로 요구된다. 기술 변화가 빠른 만큼, 학습도 지속적이어야 한다.
"배운 기간보다 배우는 속도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앞으로의 커리어는 배운 기간보다 배우는 속도가 중요하다."
학위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초 지식과 체계적 사고를 배우는 데 대학교육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커리어를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졸업 후 10년, 20년을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만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스스로 배우고, 증명하고, 진화하는 사람만이 '학위 불충분 시대'를 돌파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명함에 적힌 학교 이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평생학습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 커리어의 새로운 통화는 바로 '스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