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비밀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뇌 가소성(Neural Plasticity)에 있다. 인류의 조상은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감수했다. 빠른 성장과 전문성을 포기하고, 대신 어떤 환경에도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독립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약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약점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강력한 종으로 만든 핵심 전략이었다.

뇌는 회사처럼 작동한다

뇌 가소성의 핵심은 뇌가 미리 정해진 고정 구조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맞춰 신경회로를 스스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뇌는 신체 각 부위가 연결된 신체 지도, 이른바 '호문쿨루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신체 부위 중 하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해당 부위를 담당하던 뇌 영역은 다른 부분에 잠식되어 사라진다.

뇌는 마치 회사처럼 작동한다. 한 부서에 특정 업무가 주어지면 그 업무를 처리하고, 더 이상 업무가 없으면 그 부서는 다른 부서에 흡수되어 재편되는 것이다. 뇌의 각 부위는 어떤 일을 하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일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된다. 실제 실험에서 손가락 두 개를 하나로 묶어놓기만 해도 이를 담당하던 뇌 영역이 곧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시각 부서가 소리를 듣는다

뇌 가소성의 놀라운 면모는 감각의 경계를 넘어선다. 과학자들은 쥐의 시각 피질에 디지털 나침반 신호를 직접 전달하는 장치를 부착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쥐는 눈이 없어도 미로 속 먹이를 능숙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시각을 담당하던 뇌 영역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감각 정보를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일부 시각 장애인들은 소리의 반향을 이용해 앞을 '보는' 음파 방향정의 능력을 발달시켰다. 이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소리를 들을 때 청각 부서뿐 아니라 원래 시각을 담당하던 부위도 함께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눈을 안대로 가린 뒤 단 한 시간만 지나도 시각 부서가 소리 신호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뇌가 어떤 전기 신호든 유의미한 패턴만 있다면 처리할 수 있는 만능 데이터 처리 엔진임을 증명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뇌가 제6의 감각뿐 아니라 제7, 제8의 감각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흥미와 기쁨이 뇌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뇌 가소성은 언제나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반복하는 행위만으로는 뇌를 변화시킬 수 없다. 뇌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할 때, 특히 흥미와 긍정적 정서를 느낄 때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내재적 동기 없이 억지로 하는 반복 학습이 효과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뇌는 미완성으로 태어나 외부 세계를 스스로 학습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생애 초기 충분하고 다양한 경험이 제공되지 않으면 뇌가 발달할 기회를 잃게 된다. 어린 시절의 풍부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꿈, 뇌의 사내 정치?

우리가 매일 밤 꾸는 꿈도 뇌 가소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지구의 자전으로 밤이 되면 시각 부서는 할 일이 없어진다. 이때 뇌는 렘수면 동안 시각 부서로만 랜덤한 신호를 보내 가짜 일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이다. 이는 잠자는 동안 유일하게 할 일이 없는 시각 부서가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뇌의 '사내 정치'일 수 있다. 실제로 뇌 가소성이 작은 조숙성 동물들은 렘수면과 꿈을 덜 경험하는 경향이 있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뇌 가소성은 우리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재활 치료부터 교육 혁신까지, 뇌 가소성 연구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